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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상처와 화해로 다시 쓰는 마음의 언어

by rilry 2025. 11. 18.

“목소리의 형태(2016)”는 어린 시절의 괴롭힘과 장애, 그리고 그로 인한 고립과 자기 비난을 섬세하게 다룬 성장 드라마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 쇼야가 과거 자신이 괴롭혔던 청각장애 여학생 시코와 재회하며 죄책감에 맞서 용서를 구하는 여정을 통해, 진정한 소통과 화해의 의미를 묻는다. 이 글에서는 상처의 구조, 소통의 장벽, 그리고 용서의 무게를 중심으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분석한다.

처음 “목소리의 형태”를 본 것은 DVD로였지만, 재관람한 뒤 느낀 감정은 전보다 훨씬 깊고 무거웠다. 쇼야의 불안과 시코의 조용한 고독이 화면 너머로 전해졌고, 그들이 내린 선택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특히 용서를 향한 여정은 단순한 갈등 해결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진정한 화해였다.

 

목소리의 형태 (2016) 포스터
목소리의 형태 (2016) 포스터

괴롭힘의 상처와 고립 - 쇼야의 죄책감이 만든 벽

영화의 중심에는 어린 시절 쇼야 이시다(Shōya Ishida)의 괴롭힘이 있다. 그는 새로운 전학생인 니시미야 쇼코(Shōko Nishimiya)가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약함을 조롱하거나 괴롭히는 행동을 반복한다. 이 괴롭힘은 단순한 학교 놀림에 머무르지 않고, 쇼코의 보청기를 고의로 손상하는 등 점점 악의적으로 발전한다. 결국 학교 교장 선생님이 개입하고, 쇼야는 친구들로부터 배척당하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쇼야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무게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내면에 깊은 죄책감을 품게 된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고립되어 우울함에 빠지고,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하게 된다. 이 부분은 단순한 성장 드라마가 아닌, 과거의 폭력이 지금의 자신을 얼마나 옥죄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축이다. 또한 쇼코 역시 단순한 피해자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녀의 조용함과 수화는 약점이 아니라 소통 방식이자 삶의 일부이며, 그녀가 느끼는 외로움과 두려움은 계속해서 그녀 자신을 축소하게 만든다. 이처럼 “목소리의 형태”는 상처를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처리하지 않고, 그 상처가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죄책감과 고립은 서로를 갉아먹는 구조로 반복되며, 이는 진정한 화해가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침묵 속의 소통 - 수화와 말의 거리에서 피어나는 이해

침묵은 이 작품에서 단순히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닿지 못하는 벽을 상징한다. 쇼코는 청각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항상 어려움을 겪고, 그녀의 수화는 그녀만의 언어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다. 반면 쇼야는 과거 자신이 저지른 괴롭힘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 때문에 자기 표현을 자제하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그와 쇼코 사이에는 보이는 거리보다 훨씬 큰 심리적 간극이 존재한다. 영화는 쇼야가 수화를 배우는 장면을 매우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진심을 전하기 위한 노력이자 책임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변화로 해석된다. 또한 쇼코가 마침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순간은, 그녀의 고립이 단순한 신체적 장애 때문만이 아님을 드러낸다. 그녀의 침묵 안에는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의지가 얽혀 있으며, 그 감정이 말로 드러나는 순간은 두 사람 모두의 심리적 균열을 가시화한다. 이들의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시도와 실패로 구성된다.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노력, 손을 내미는 용기, 그리고 말 대신 수화로 전하는 따뜻함이 쌓이며, 영화는 소통의 진정한 의미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다시 시도하는 의지’임을 강조한다.

화해와 성장 - 스스로를 용서하는 여정의 끝에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쇼야와 쇼코가 재회하여 과거를 마주하고, 진심 어린 화해를 시도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쇼야는 쇼코에 대한 사과를 전하기 위해 그녀에게 노트북을 돌려주고, 동시에 자신의 자살 계획을 밝히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결심을 고백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사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포함한 삶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을 한다. 쇼코 역시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고민하며, 자신이 타인에게 끼친 상처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용서하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녀의 화해는 단순히 쇼야와의 관계 회복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화해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들이 완전히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하진 않지만, 서로를 향한 이해와 연대의 가능성이 열렸음을 보여준다. 이는 관객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또한 주변 인물들, 예컨대 같은 외로움을 겪는 친구 토모히로 나가츠카(고립된 또래)와의 관계는 쇼야의 변화에 중요한 축을 이룬다. 그의 존재는 쇼야에게 ‘나만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현실적 지지를 제공하며, 화해 과정이 개인의 변화뿐 아니라 공동체적인 회복이라는 차원을 가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사람은 변화할 수 있는가?”,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과거를 지우는 것보다 중요하진 않은가?”라는 물음이다. 영화는 이 질문에 답을 강요하지 않고, 변화와 용서가 끝이 아닌 여정임을 조용히 제시한다.

“목소리의 형태”는 단순한 성장담을 넘어, 죄책감과 화해, 그리고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다. 아픈 마음을 가진 모든 이에게, 그리고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기 두려운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