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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필모 전체로 읽는 지브리 사상의 결

by rilry 2025. 12. 3.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세계는 단순히 명작 애니메이션의 집합이 아니라, 자연·기술·인간이라는 근원적 질문을 반복적으로 성찰한 일종의 철학적 기록에 가깝다. 그는 초기 모험물에서 시작해, 중기에는 문명 비판과 생태적 세계관을 심화했고, 후기에서는 존재론적 회귀와 개인의 구원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사상의 층위를 확장해 왔다. 본 글은 그의 대표 작품들을 단순 나열하는 대신, 시대별 주제 변형과 시선의 변화에 주목하여, 미야자키 사상이 어떤 흐름으로 고도화되어 왔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미야자키 필모 전체로 읽는 지브리 사상의 결

1. 초기 : 모험·비행·자유의 세계관

미야자키 감독의 초창기 작품들은 ‘하늘을 향한 욕망’과 ‘모험을 통한 성장’이라는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로 이어지는 흐름은 재난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인물들이 적극적 행위자로서 세계를 탐색하고 문제를 돌파하려는 에너지가 강하다. 그는 초기부터 자연의 파괴를 경계하면서도, 인간이 스스로 세계를 다시 구축하고자 하는 희망적 동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비행은 초기 필모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 상징이다. 하늘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구속에서의 이탈’이자 ‘세계의 원형적 구조를 내려다보는 시점’이다. 미야자키는 이 시기부터 기술에 대한 ambivalent한 시선을 보여주는데, 비행 장치는 자유의 도구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는 위험 요소로 자리한다. 이러한 양가적 시각은 이후의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2. 중기 : 문명 비판과 생태적 경계

중기 필모에 해당하는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등은 자연·신성·인간 문명의 충돌을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다룬다. 이 시기 미야자키는 선악의 이분법을 완전히 제거하고, 서로 다른 존재가 부딪히면서 생기는 경계의 복잡성을 강조한다. 산업화의 속도,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태도, 고유한 이름을 잃어버리는 현대인의 정체성 문제 등은 중기 세계관의 주요 키워드다. 특히 <모노노케 히메>는 인간 문명이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극한의 밀도로 제시하면서도, 그 속에서 ‘누가 옳다’라는 판단을 유보한다. 감독은 갈등의 해결보다,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 자체를 바라보는 태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 세계관은 이후의 후기 필모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미야자키의 철학이 보다 인류학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된다.

3. 후기 : 존재론과 관계의 회복

후기 작품군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바람이 분다>는 인간 존재의 취약성과 생명의 원형적 형태에 집중한다. 특히 감독은 전쟁·재난·노쇠·상실이라는 현실적 주제를 직접적으로 끌어오며, 캐릭터의 감정선을 깊이 파고든다. 이 시기의 서사는 초기에 비해 훨씬 느리고 밀도 높은 정서적 진동을 지니는데, 이는 세계를 정복하거나 구원하려는 서사가 아니라, ‘존재가 서로를 어떻게 지탱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둔 결과이다. <바람이 분다>에서는 기술과 전쟁의 관계가 다시 등장하지만, 초창기 작품과 달리 기술의 비극적 역사와 창조자의 책임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반면 <포뇨>는 생명의 순환과 귀환 구조를 강조하며, 동화적 이미지를 통해 세계가 다시 태어나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러한 대비는 후기 미야자키가 ‘구조적 세계관’보다 ‘감정의 기반’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4. 주제별 비교 분석 및 종합적 해석

미야자키 감독의 필모는 단순히 시대별로 나뉘지 않는다. 동일한 주제가 서로 다른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되며, 형식과 정서의 깊이가 점차 달라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유기적 체계를 이룬다. 아래 표는 그의 주요 주제를 ‘자연관·기술관·인물상·서사 구조’ 측면에서 비교한 것이다.

구분 초기 필모 중기 필모 후기 필모
자연관 재난 이후 생태 회복, 자연은 동맹적 존재 자연-문명 충돌, 경계의 복잡성 강조 생명의 순환, 자연은 존재적 귀환의 공간
기술관 자유를 부여하지만 위험성 내재 문명의 폭력성 비판, 기술의 윤리 문제 부각 창조자의 책임, 기술이 존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탐구
인물상 모험가·행동 중심의 영웅형 갈등 속 정체성 탐색형 역사·감정·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성찰적 인물
서사 구조 탐험/발견 중심의 직진적 구조 경계에 머무는 체류형 구조 관계의 회복과 내면적 여정 중심

종합하면, 미야자키 감독의 세계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일관된 축 위에 놓여 있으나, 그 표현 방식은 시대를 따라 훨씬 정교하게 변화해 왔다. 초기의 모험적 상상력은 중기의 생태적 사유를 거쳐, 후기에는 존재론적 성찰로 이어진다. 특히 그는 세계를 해결 가능한 문제로 보지 않고, 그 복잡성을 인정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작가성을 형성한다.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필모의 가치는 단순히 세계적 명성을 넘어, ‘애니메이션의 철학적 가능성’을 가장 일관되고 깊이 있게 탐구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은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 세계를 다시 바라보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사상적 힘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