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전은 스튜디오 지브리가 구축한 세계관과 상상력의 원천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전시로, 작품의 탄생 과정과 창작 철학을 세밀하게 엿볼 수 있었다. 초기 스케치부터 미완의 콘티, 질감 가득한 배경화까지, 애니메이션 한 편이 어떤 노동과 사유를 통해 완성되는지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관람 내내 익숙한 장면들이 눈앞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감독이 말해온 ‘살아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 재확인하게 해준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 목차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한 지브리의 실체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사랑해온 지브리 세계가 단순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전시 공간은 조명, 음향, 동선까지 작품의 분위기를 그대로 끌어와 관람객이 자연스레 몰입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특히 지브리 대표작의 오프닝 장면을 대형 스크린으로 재구성한 공간은 관람의 출발점이자 감정의 장치로 작동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화면이었지만, 극장이나 TV가 아닌 전시라는 형식으로 마주하니 다시 처음 본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작품 구성도 흥미로웠다. 단순히 인기작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대별, 주제별로 감독의 사고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도록 유기적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는 명확히 ‘감독 개인의 전기적 전시’라기보다는 ‘창작 세계에 대한 탐구’에 가까웠는데, 그래서인지 관람하는 동안 특정 작품의 팬 여부와 관계없이 ‘미야자키식 상상력’이 어떻게 축적돼 왔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관람객들은 캐릭터와 배경을 감각적으로 즐겼고, 성인 관람객들은 그 이면의 노동과 철학에 시선을 두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전시가 세대와 성향을 넘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첫 공간은 단순히 추억을 소환하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오래 기억해온 세계가 실제로 어떤 재료와 사유로 이루어져 있는지 탐색하도록 이끄는 시작점이었다. 그 경험이 이번 전시를 단순 팬서비스 이상의 가치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창작의 기원 : 스케치와 콘티가 보여준 감독의 사고방식
본격적인 창작 과정 전시 구역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초기 스케치, 러프 콘티, 색채 실험 등이 다층적으로 공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그는 단순히 이야기나 대사를 먼저 떠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먼저 세우는 창작자’라는 점이었다. 전시된 스케치 대부분은 매우 거칠면서도 세밀했고, 인물의 감정선이나 장면의 에너지가 붓 터치만으로도 충분히 읽혔다.
특히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초기 스케치들은 완성작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졌는데, 이는 감독이 작품의 메시지와 세계관을 여러 방향으로 조율하며 발전시켰다는 증거로 보였다. 콘티가 전시된 구간에서는 미야자키 감독의 작업 방식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는 장면을 구성할 때 ‘캐릭터가 드러나는 움직임’을 무엇보다 우선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콘티는 이미 영화의 흐름을 거의 완성된 형태로 제시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창작자의 노트와 메모도 함께 공개되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단순한 작업 지시가 아니라 세계를 어떻게 살아 있는 유기체로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었다. 지브리의 작품들이 시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이유가 단순한 작화력이 아니라, 세계를 독립적인 생명체로 바라보는 감독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 구역은 팬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기도 했는데, 이는 스케치와 콘티가 감독의 사유 구조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문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관의 확장, 자연과 인간에 대한 미야자키의 시선
전시 후반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구축해 온 거대한 세계관의 중심을 자연·인간·기술의 관계라는 주제로 정리하고 있었다. 이 구역은 작품별 전시라기보다는 감독의 철학적 흐름을 보여주는 공간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모노노케 히메와 원령공주의 배경화는 자연을 하나의 생명체로 인격화하는 감독의 시각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자연을 절대 선으로, 인간을 절대 악으로 그리지 않고, 양측이 충돌하는 순간에서 드러나는 긴장과 균형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관련 전시에서는 ‘성장’이라는 감독의 오래된 관심사를 다층적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치히로의 작은 움직임, 표정 변화, 주변 세계의 묘사까지 모두 한 인간이 낯선 세계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확장해 나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장치였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 전시가 특정 작품의 장면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독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 작품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시각화되는지를 입체적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기술과 문명의 발전에 대한 우려, 자연에게서 배워야 하는 겸손함, 인간의 욕망이 남긴 상처 등은 미야자키 감독의 대표작 전반에 흐르는 공통된 정조이며, 이번 전시는 그 정조를 작품 간의 관계 속에서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었다.
결국 이 섹션은 관람객이 단순히 ‘작품을 본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감독의 철학을 해석한다’는 지점까지 도달하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었다.
정리하며 : 왜 미야자키 전시는 여전히 유효한가
이번 감독전은 단순한 팬심을 충족시키는 전시가 아니라, 한 창작자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는지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자리였다. 전시장에 놓인 수많은 스케치와 콘티, 세계관 설명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작품을 새롭게 읽도록 만들었고, 마치 지브리의 세계가 여전히 확장되고 있는 듯한 감각을 선사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는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창작의 근원을 궁금해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할 만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2편, 3편에서는 작품별 세부 분석과 감독의 인간관·세계관을 더 깊이 탐구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