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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돼지, 어른을 위한 판타지와 도망칠 수 없는 전쟁의 그늘

by rilry 2025. 11. 29.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전에서는 1992년 작품 <붉은 돼지>를 다룬다. 이 작품은 기존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주로 지녀 온 밝고 환상적인 분위기와 달리, 전쟁 이후의 감정과 개인의 상처, 그리고 시대적 변화에 흔들리는 인간의 존엄을 직접적으로 탐구하는 작품으로 기록된다. 특히 주인공 포르코 로쏘가 인간이 아닌 ‘돼지’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설정은 단순히 기괴한 유머가 아니라, 전쟁을 견뎠던 한 인간이 스스로를 벌하고 또 단절시키는 방식의 상징적 표현이다. 이번 글에서는 포르코의 정체성, 당시의 이탈리아 상공을 가르는 비행사들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미야자키 감독이 작품 전반에 배치한 강한 반전 메시지를 중심으로 작품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붉은 돼지

※ 본 게시물의 썸네일 이미지는 AI 도구를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 The thumbnail image of this post was produced using AI tools.

전쟁 이후의 인간, 왜 돼지가 되어야 했는가

<붉은 돼지>의 첫 번째 핵심은 주인공 포르코 로쏘가 인간의 모습을 버리고 돼지가 되어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독특한 세계관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전쟁을 살아남은 이들이 겪는 구조적 죄책감과 자기 혐오를 시각화한 상징으로 읽힌다. 포르코는 뛰어난 조종사였으며 전쟁에서 수많은 임무를 성공시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동료들이 죽고 자신만 살아남는다. 바로 그 ‘남겨짐’의 경험이 그의 정체성을 뒤흔들며, 그는 그 사건을 기준으로 인간의 존엄 자체를 스스로 포기한 존재로 변화한다. 그가 인간 대신 돼지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것은 자신에게 내려진 하나의 ‘벌’이며,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죄의 기억을 직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의 태도는 단순한 냉소나 반항의 형태가 아니다. 포르코는 전쟁을 무용하게 소비했던 국가와 이념의 폭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이 과거 그 폭력에 복무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인지한다. 이런 모순된 내면 감정은 그가 “나는 돼지다”라고 스스로를 낮추면서도, 하늘을 나는 일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그에게 비행은 생존자 죄책감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자유의 상징이자, 동시에 잃어버린 인간성에 대한 흔적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포르코의 정체성은 유머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이 남긴 무게와 자기 응시의 깊은 층위를 담고 있다.

이탈리아 상공의 파일럿들, 현실과 환상 사이의 시대적 배경

작품의 배경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로, 군사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파시즘이라는 정치적 힘이 거세게 부상하던 복잡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외형적으로는 산업화와 기술 혁신이 진행되었지만, 실제로는 전쟁의 상흔이 사회 전반에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미야자키는 이러한 현실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바다 위 공중전을 아름답게 묘사하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유려하게 흐린다. 해적단, 사설 조종사, 비행기 공방, 그리고 공군의 잔재까지 한데 섞여 존재하는 세계는 역사적 사실성을 유지하면서도 지브리 특유의 몽환적 정서를 만들어낸다.

특히 기체 설계와 비행 장면은 작품의 핵심 미학적 요소로 자리 잡는다. 미야자키는 실제 1920~30년대 이탈리아 비행사들의 기록과 항공기 도면을 참고했다는 점에서, 작품 전반에 깃든 사실적 감각은 단순한 배경 재현을 넘어 시대적 호흡을 담아낸 결과물이다. 비행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비감(悲感)을 동반하는 이유는, 감독이 하늘에서 펼쳐지는 자유의 이미지 속에 전쟁의 잔재를 겹쳐 배치했기 때문이다. 그 하늘은 자유의 공간이지만, 또한 과거 폭력이 되풀이되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포르코가 비행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한 직업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가 여전히 그 하늘에서만 자신의 죄를 견디고 정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포르코와 피오, 어른과 청춘이 갈린 두 세계

포르코와 피오는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대비 관계를 이룬다. 포르코가 전쟁의 기억에 갇힌 중년의 인물이라면, 피오는 기술과 미래를 믿는 청춘의 상징이다. 피오가 지닌 에너지와 확신은 포르코의 소극적이고 자기응시적인 태도와 강하게 충돌하며, 그 충돌은 작품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피오는 비행기의 구조를 분석하고 다시 설계하며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한계를 두지 않는 상상력과 미래를 향한 전진의 힘을 지니고 있는데, 이 특성은 전쟁을 통해 멈추어버린 포르코의 내면과 극명한 대비를 형성한다.

피오가 포르코의 비행기를 복원하는 과정은 단순한 정비가 아닌 상징적 행위로 확장된다. 그녀는 망가진 기체를 다시 살려내며, 마치 과거의 폐허를 새로운 기술로 재건하려는 시대의 열망을 구현한다. 그러나 포르코는 그 회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미야자키가 기술만으로 인간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개선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겪는 실존적 고통과 전쟁이 남긴 윤리적 상처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포르코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따라서 피오와 포르코의 대비는 단순히 세대 차이가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정지한 세대’와 미래를 향한 ‘진행하는 세대’의 간극을 상징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반전 메시지, 그리고 ‘도망칠 수 없는 세계’

<붉은 돼지>는 지브리 작품 중에서도 가장 명시적으로 전쟁의 폭력성과 이념이 인간에게 남기는 상처를 비판하는 작품이다. 포르코는 국가를 위해 싸웠던 영웅이지만, 그는 어느 순간 국가라는 구조 자체가 개인의 삶을 소모하고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장치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국가를 믿지 않으며, 새로운 전쟁의 기운이 감돌 때에도 그 어떤 이념에도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냉소의 표현이 아니라, 전쟁을 실제로 체험한 세대의 깊은 회의와 정신적 피로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품은 영웅주의를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영웅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소모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 영웅을 만들어낸 세계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차분히 직시한다. 포르코가 돼지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그가 겪은 상처와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야자키는 “전쟁은 끝났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작품에 깊게 새겨 넣으며, 관객이 전쟁 이후의 삶에 대해 더욱 성찰하도록 만든다.

결국 <붉은 돼지>는 도망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포르코는 상처를 지닌 채 하늘을 날지만, 그 비행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죄책감과 자유 사이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고독한 여정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을 어른들이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핵심이자, 세월이 흘러도 반복해 보게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