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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 전쟁과 사랑이 만든 두 개의 세계

by rilry 2025. 11. 24.

본 리뷰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전의 네 번째 글로, 2004년 개봉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다룬다. 본 작품은 겉으로는 판타지 모험을 내세우지만, 이면에는 전쟁의 파괴성과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윤리적 구조를 세심하게 배치한다. 특히 소피와 하울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맞서며 성장하는 과정은, 미야자키가 늘 질문해온 ‘인간은 어떠한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확장하는가’라는 핵심 주제를 다시 한 번 정교하게 드러낸다. 본 글에서는 세계관의 양면성, 인물들의 내적 변화, 그리고 전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초점을 맞춰 작품의 층위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전쟁과 사랑이 만든 두 개의 세계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전쟁과 사랑이 만든 두 개의 세계

※ 이 이미지는 AI로 생성된 오리지널 일러스트이며, 지브리 스튜디오 또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공식 이미지가 아닙니다.
※ This image is an original AI-generated illustration and is not an official image of Studio Ghibli or “Howl’s Moving Castle.”

 

움직이는 성이 상징하는 ‘불안정한 세계’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이름대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성’이다. 삐걱거리고 흔들리며 어느 방향으로든 흘러가 버릴 것 같은 이 건축물은, 작품 전체의 정서를 상징하는 거대한 은유로 기능한다. 성은 하울의 내면이자, 전쟁으로 인해 불안정해진 세계의 축소판이다. 외형은 거대하고 위압적이지만 내부는 따뜻한 공간도, 위험한 공간도 함께 공존한다. 이는 인간의 심리처럼 복합적이며,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한 상태를 드러낸다.

미야자키는 이 ‘움직이는 집’을 통해 현대 사회의 불안정성을 시각화한다. 성이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는 것처럼, 인간의 정체성도 환경과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소피가 성에 들어온 직후 느끼는 낯섦과 두려움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자리를 찾는 모든 이들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작품 초반의 성은 혼란과 방황의 공간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면서 점차 ‘머물 수 있는 집’으로 변화한다. 이 변화는 외적 구조가 아니라, 공간을 채운 인간들의 선택과 감정이 만든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소피와 하울, 두 개의 상처가 만들어낸 동행

소피는 갑작스러운 저주로 노년의 모습이 되어버리지만, 이 변화를 단순한 슬픔이나 분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이전보다 더 솔직하게 세계와 대면하며,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명확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미야자키는 소피의 변화를 ‘늙음’이라는 외형적 상태로 표현함으로써, 성숙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소피는 늙었기 때문에 강해진 것이 아니라, 외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만큼 내면의 힘을 마침내 드러낼 수 있게 된다.

하울 역시 내면의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을 선택하고,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내면을 회복하는 길’을 함께 걷는 서사로 읽힌다. 서로의 약함을 감추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차분히 인정해나가는 방식은 미야자키 특유의 섬세한 인간 이해를 드러낸다.

이 동행은 소피가 하울의 ‘심장’을 되찾는 장면에서 정점을 맞는다. 이는 마법적 해결이 아니라, 서로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손을 놓지 않은 결과이다. 미야자키는 인간의 변화가 영웅적 결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천천히 쌓여가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마법과 전쟁, 미야자키가 드러낸 윤리적 시선

이 작품에서 전쟁은 중심에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폭격 장면은 짧고 단편적이며, 대부분은 그 여파나 주변의 파괴된 풍경을 통해 암시된다. 미야자키는 전쟁을 ‘이유 있는 폭력’으로 묘사하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무의미한 비극으로 제시한다. 작품 속 마법사들은 전쟁의 도구로 소모되며, 인간 세계는 상상력의 힘을 파괴적 용도로 전환한다. 이는 미야자키가 일관되게 보여온 반전(反戰) 정신의 변주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감독이 전쟁을 선악의 구도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악의를 가진 자들을 응징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모두를 상처 입히는 구조’로 드러낸다. 하울의 변신은 전쟁에 저항하려다 오히려 자기 파괴의 길로 내몰리는 개인의 비극을 상징하며, 소피가 이를 막기 위해 선택하는 행동들은 ‘평화를 향한 윤리적 노력’의 형태를 띈다. 미야자키는 평화가 전쟁의 부정만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각자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결국 세계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재생의 순간, 사랑이 세계를 바꾸는 방식

영화의 마지막에서 하울의 성은 더 이상 위태롭게 흔들리지 않는다. 불안정하게 기울어 있던 구조는 재편되고, 관계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를 이룬다. 소피가 젊은 모습과 노년의 흔적을 동시에 간직하게 되는 결말은, 성장이란 과거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한 흔적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암시한다. 이는 미야자키가 반복적으로 강조해온 ‘재생의 윤리’와 깊이 연결된다.

사랑은 이 작품에서 감정적 로맨스라기보다, 세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제시된다. 소피와 하울이 서로의 상처를 이해함으로써 성이 다시 살아나듯, 인간의 이해와 연대는 파괴된 세계를 복원하는 작은 씨앗이 된다. 전쟁의 흔적은 단숨에 사라지지 않지만,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선택들이 세계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4편을 정리하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미야자키가 전쟁과 사랑, 상처와 재생을 가장 정교하게 직조한 작품 중 하나다. 다음 5편에서는 또 다른 작품을 통해 그의 세계관이 어떻게 확장되고 변주되는지를 이어서 살펴보고자 한다.